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석화 (姜錫花)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 전몰일자 : 1950-9-15

공훈사항

강석화 일등병은 1932년 10월 22일 경상북도 대구시 삼덕동(三德洞)에
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직할부대에서 복무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 전선에서 국군이 철
수를 거듭하게 되자, 채병덕 총참모장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 모든 재경부
대를 동원하여 의정부지구 방어에 중점을 두고 전방의 제1, 제6, 제7사단
에 배속시켜 전투력을 증강함으로써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모든 노
력을 경주하였다.
따라서, 6월 25일 11:00에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고 이날 오후에는 제18연대(-1)도 추가로 배속하였으며 제8연대를
제6사단에 배속시켜 가평지구로 투입하였다.
또한, 서울 특별 연대는 제1사단에, 육사생도대대(전투경찰 1개 대대)는
제 7사단에, 포병학교 제1교도대대는 제1, 제6, 제7사단에 제2교도대대는
제7사단에, 독립 기갑연대 제1대대(장갑차)는 제1, 제6, 제7, 제8사단에 배
속하였으며 6월 25일 저녁에는 육군본부 장교연대를 의정부지구 전투사
령부에 배속시켜 창동지역에 배치하였다.
그후,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
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
하고 6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한강방
어선을 7일간을 지탱 후 시흥-수원-평택-대전-김천을 거쳐 8월 초에
는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강석화 일등병은 북한군의 9월 공세시 1950년 9월 15일 장렬히 전사하
였다.
정부에서는 그를 길이 추모하고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
기 의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그의 이름을 새겨 추모
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