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승재 (姜承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0618596
  • 전몰일자 : 1953-4-6

공훈사항

강승재 일등중사는 1931년 6월 21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태어
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3사단 제18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3사단은 1947년 12월 1일 창설된 제3여단이 1949년 5월 12일 사단으
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3사단 제22연대는 경기도 고양과
김포 일대로 투입되어 제1사단을 지원한 후, 철수하여 한강선방어임무를
수행하였으며, 7월 22일 사단에 복귀하였다. 한편, 제23연대는 경상남도
진주지구에서 6월 29일 울진지역으로 이동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
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사단은 7월 19일부터 8월 4일까지
경상북도 영덕지구에서 북한군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을 수행한 후,
8월 9일부터 9월 16일까지 포항지구전투를 실시하였다. 제3사단은 1950년
9월 22일 낙동강방어선에서의 반격작전에 참가하여 영덕과 삼척을 거쳐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다. 그후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원산탈환작전을 실시하였으며,10월 16일부터 11월 5일까지는 원산-함흥
지구를 경비하였다. 11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22연대는 혜산진으
로, 제23연대는 나남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12월 1일 중공군의 대거 침공에 따라, 12월 9일까지 백암 및 나
남- 길주- 성진-흥남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제
22연대는 구룡포로, 제23연대는 부산으로 해상철수하였다. 12월 15일 제
18연대가 제3사단에 예속되고, 제26연대는 수도사단으로 예속·변경되었으
며,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부터 제2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된 후 강원도 원
주로 이동하였다. 그후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홍천 북방 소양강 일대에
서 북한군 제10사단과 제2사단의 유격대소탕전을 전개하였다.
1951년 1월 5일 제2군단으로부터 제3군단으로 배속 변경 후, 1월 7일부
터 10일까지 평창- 영월- 제천 영주- 춘양으로 철수하였다가, 2월 4일부
터 10일까지 춘양- 영월- 평창- 횡성으로 진격하였다. 동년 5월 16일부터
22일까지 현리전투를 실시하였으며,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가칠봉 전방
1,052 및 1,211고지를 공격하였다.
1952년 1월 7일부터 11일까지 제6사단의 금성천지역을 인수하였으며, 3
월 18일 백야전사령부로 배속되었다. 4월 9일 석장리- 973- 949- 739고지
를 연하는 주저항선에 배치되었다. 제3사단은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748(피의고지)·572(독수리고지)고지에 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1953년 1월 1일부터 4월 12일까지 필승·텍사스·오봉 능선에서 전초진
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그후 화천에서 부대정비를 한 후, 6월 15일 금성
천 부근 제5사단, 제8사단 작전지역을 일부 인수하고,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 529고지(관망산)전투를 실시하였다. 또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금성천(여문리) 부근 전투를 실시하였다.
강승재 일등중사는 필승·텍사스·오봉 능선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
하던 중인 1953년 4월 6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5-3-165
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