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승일 (姜勝一)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4529
  • 전몰일자 : 1951-8-1

공훈사항

강승일 소령은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新設洞)이 본적이나 원래는 황
해도에서 태어나, 1949년 5월 23일 육군사관학교 제8기생으로 소위에 임
관한 후 제1사단에서 복무하였다. 그 후 1950년 5월 1일 중위로 승진하였
고, 1951년 1월 1일에는 대위로 승진하였다.
제1사단은 한국전쟁의 발발 이전부터 청단에서 고랑포간 38도선경비임
무를 수행하던 중,『육탄10용사』를 배출하는 등 육군의 최정예 일선부대
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문산-적성을 연하는
선에서 예하 3개 연대(제11, 제12, 제13연대)로 선전을 하였으나, 의정부지
역과 균형을 취하기 위하여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시흥에서 제
1군단에 통합되어 7월 1일부터 8월 2일까지 수원 -평택- 조치원- 청주-
음성- 무극리- 화령장- 문경- 낙동강으로 철수하였다. 제1사단은 비교적
전제를 유지하여 백선엽(白善燁) 사단장의 지휘하에 8월 3일부터 29일까
지 다부동전투를 실시하였고, 8월 30일부터 9월 24일까지는 낙동강방어선
을 지키기 위하여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수행하여, 풍전등화와 같던
대구를 방어하고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후 북진작전의 선봉으로 제1사단이 선발되어, 10월 11일 38도선을 돌
파하고, 10월 19일에는 역사적인 평양탈환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여세
를 몰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평양- 순천- 개천- 용산동- 운산까
지 북진하였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에 그쳤고,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
하여 1951년 1월 6일까지 평양과 사리원, 안양을 거쳐 경기도 안성으로
철수하였다. 1월 30일부터는 안성-안양으로 재진격하고, 3월 14일에 제1
사단은 미 제3사단과 더불어 서울을 재탈환한 후, 1952년 4월 2일까지 임
진강선방어임무를 수행하였다.
강승일 소령은 1951년 8월 1일 임진강선방어임무를 수행하던 중 장렬
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공훈을 기리
어 1951년 8월 1일 은성화랑무공훈장과 더불어 대위에서 소령으로 추서
하였으며,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
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