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승택 (康承澤)

  • 군별 : 해병대
  • 계급 : 하사
  • 군번 : 9200658
  • 전몰일자 : 1952-7-13

공훈사항

강승택 하사는 제주도 남제주군(南濟州郡) 표선면(表善面)에서 태어나,
해군에 입대하여 해병대 제1대대에서 복무하였다.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에서 380명의 병력으로 창설
된 후, 그 해 12월 28일 제주도로 이동하여 제주읍과 모슬포에 주둔하면
서 공비소탕작전과 대민지원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
자, 1950년 7월 15일 해병대 1개 대대를 군산항으로 이동시켜, 7월 19일
부터 20일 사이에 장항전투 및 군산·이리지구전투에서 적 60명을 사살하
고 5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도 전사 37명, 부상 31명, 행방
불명 8명의 피해를 입었다. 그후 해병대대는 김성은(金聖恩)부대로 개칭된
후, 7월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함양·진주지구에서 지연전을 수행한 후
경상남도 마산으로 철수하여, 서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김성은부
대는 8월 3일부터 9월 20일까지 진동리전투, 중암리전투 및 통영상륙작전
을 실시하여, 북한군 1개 대대를 섬멸함으로써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였
으며 북한군의 마산 진출을 저지하였다.
한편,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사령부는 신병 3,000명을 훈련시켜
제1연대를 창설하고, 9월 6일 경상남도 부산으로 이동 후 김성은부대 2개
중대를 배속받아 9월 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였다. 그후 행
주대교와 연희고지를 거쳐, 9월 28일 수도서울 탈환에 선봉적 역할을 수
행하였으며, 10월 1일부터 5일 사이에는 서울-마석우리간의 경춘가도에
있던 잔적을 소탕하였다. 그후 해병 제1연대는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하
여 제1, 제3대대는 11월 3일부터 12월 8일까지 원산지구후방경비임무를
수행한 후 진해로 이동하였으며, 제2, 제5대대는 12월 3일부터 14일까지
흥남지구교두보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1951년 1월 24일부터 2월 14일까지 해병대는 미 해병 제1사단에 배속
되어, 안동·영주·영덕지 역에서 북한군 패잔병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2월
19일부터 3월 12일까지는 육군 제7사단에 배속되어 영월지구공비소탕작
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3월 17일부터 4월 3일까지 해병대는 다시 미 제1
해병사단에 배속되어, 3월 24일에는 가리산(1,051고지)을 점령하고, 4월 3
일에는 내평리-물노리선까지 진격하였다. 4월 9일부터 18일까지 해병대
는 미 제7연대 진지를 인수 후 화천을 점령하였고, 4월 22일에서 30일 사
이에는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를 맞아 춘천을 거쳐 홍천강선으로 철수
하였다. 그후 5월 1일부터 22일까지 홍천강선을 방어하였으며, 5월 26일부
터 6월 1일까지 홍천강(송정리)에서 화천저수지 남안으로 공격하였다. 그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도솔산전투를 실시하여, 도솔산을 점령하였다.
1951년 9월 1일부터 1952년 3월 17일까지 해병대는 김일성(924)고지
및 모택동(1026)고지를 점령, 방어하였다. 이후 1952년 3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판문점과 장단지역을 방어하였으며, 9월 6일부터 20일까지는 36
전초(혼비고지)진지지 역을 방어하였다.
강승택 하사는 해병대 제1대대에서 근무하다가, 판문점지역에서 방어임
무를 수행하던 중 1952년 7월 13일 장단에서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