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승후 (姜承厚)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02704
  • 전몰일자 : 1951-11-10

공훈사항

강승후 하사는 제주도 남제주군(南濟州郡) 안덕면(安德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9사단 제30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9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병력과 부대확장이 절실하던 차, 서울
수복을 한 직후 1950년 10월 25일 예하 3개 연대(대전 주둔 제28연대, 공
주 주둔 제29연대, 청주 주둔 제30연대)를 기간으로 서울의 청계초등학교에
서 창설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11월 20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0
월 30일 후방지역 경계임무를 수행차 신설된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그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라북도 대둔산, 경상북도 김천지구·상주
지구 등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
이 전면철수하자, 사단은 1950년 10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대전 -대
구 -원주- 강릉- 진부(평창)로 이동하며, 제2군단으로 배속 변경된 후, 서
림리- 현리- 부평리 간의 38도선을 방어하고 일부 병력으로 설악산-오
대산지역의 북한군 유격부대 및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12월 26일
제1군단으로 배속이 변경되고, 1·4후퇴시 현리- 속사리(진부)- 춘양까지
철수한 적도 있었지만, 1951년 1월 19일부터 2월 2일까지 제3군단으로 배
속·변경 후 춘양-장성-하진부리로 진격하였다. 2월 12일에서 25일까지
중공군 2월공세시 하진부리에서 다시 철수하고, 정선-창리선으로 이동·
방어하였다. 그후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리전투에 참가하였다. 6월에
는 제9사단이 철의 삼각지대(와이오밍선)로 진출하였으며, 7월 1일부터 31
일까지 김화지구를 방어하였다. 이후 포천·철원 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
비 및 교육훈련을 한 후, 1951년 11월 3일부터 1952년 4월 4일까지 281·
395·396·500·343·252·358고지 등에서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또 4월
6일부터 9일 19일까지 사단은 300·278·596·260·323·500·396·395고지 등
에서 전초쟁탈전 및 포로획득임무를 수행하였다.
강승후 하사는 1951년 11월 10일 500고지 등에서 중공군과 대결하여
전투임무를 수행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