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시준 (姜時俊)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3353
  • 전몰일자 : 1952-11-30

공훈사항

강시준 하사는 경상남도 진양군(晋陽郡) 금산면(琴山面)에서 태어나 육
군에 입대하여, 제7사단 제5연대에서 근무하였다.
제7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1연대는 동두천지구를 제9연대는 포
천지구 정면을 맡아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1950년 6월 25일
부터 7월 4일까지 의정부지구방어전투와 한강 및 시흥지구방어전투에 참
가하였다.
그후 제7사단은 7월 5일 해편되었다가, 7월 10일 전주에서 다시 제3, 제
9연대를 기간으로 사단을 재편성한 후, 7월 16일부터 31일까지 전주·임실
·남원·운봉·함양 등지로 철수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지역으로의 우
회진출을 지연시키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제7사단은 1950년 8월부터
9월까지 포항 및 의흥지구와 영천지구에서 낙동강선방어전투를 실시하고,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10월 1일부터 9일까지는 안동·청주·양평·포천
·양문리로 이동하여, 양문리(포천)에서 38도선을 돌파하고,10월 9일부터
16일까지 양문리 -김화- 평강- 정봉리로 이동하였다.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제7사단 제8연대는 제1사단과 함께 평양의 배
후로 우회공격작전을 전개하여, 김일성대학을 점령하고 평양시내에서 잔
적소탕작전을 실시한 이후, 10월 22일까지 강동- 평양- 순천- 개천- 구장
동으로 진출하였다.11월 1일부터 26일까지는 중공군이 개입하여 비호산
전투 후 개천- 덕천- 북창- 순천으로 철수하였다. 그후 1950년 12월 2일
부터 1951년 1월 8일까지 승호리- 수안- 시변리- 연천 -원주- 영월선으
로 철수하였다.
1951년 1월 19일부터 2월 4일까지 평창- 정선선에서 북한군 제9사단의
공격을 저지하였고, 2월 12일부터 4월 22일까지 영월- 평창- 인제- 현리
지역 일대에서 전투를 하였다. 4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 중공군의 제1,
제2차 춘계공세로 인제·홍천·춘천·화천지역에서 밀고 밀리는 쟁탈전을 전
개하였으며, 8월 6일부터 9월 2일까지 618 -901 -883고지작전을 전개하였
고,9 월 24일부터 27일까지 백석산(1,142고지)전투를 실시하였다.
1951년 12월 25일부터 1952년 2월 13일까지 크리스마스고지(1,090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5월 22일에는 중공군의 890고지를 기습공격하여 격
퇴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4일까지 제7사단은 크리스마스고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1952년 11월 15일부터 1953년 1월 30일까지 미 제
25사단에게 작전지역을 인계하고, 양구로 이동하여 군단예비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강시준 하사는 제7사단에서 복무하던 중, 1952년 11월 30일 중공군을
저지하고자 양구지구전투에서 용전하던 중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54년 9월 30일 무성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였으며,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
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