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시종 (姜時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334446
  • 전몰일자 : 1950-10-1

공훈사항

강시종 일등병은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범일동(凡一洞)에서 태어나, 육
군에 입대하여 제1훈련소에서 복무하였다.
제1훈련소는 1950년 7월 11일 국일명(육) 제46호에 의거, 육군본부 직
할부대로 창설되어, 초대 소장에 대령 최석(崔錫)이 보직되었다. 동년 8월
14일부로 중앙훈련소에 제1훈련소가 배속되었다. 이때는 한국전쟁이 발발
하여 7월말까지 금강방어선이 무너지고 낙동강방어선에서 UN군과 국군은
북한군에 대항하여 시간과 공간을 다투는 시점으로서, 1950년 8월 초 최
석 대령을 책임자로 하여, 경상북도 대구에서 교육대라는 명칭으로 신병
모집훈련소를 급편하였다. 이때는 대구에서 경상남도 부산으로 육군본부
마저 철수할 정도의 위기였으며, 전방의 병력소모는 극도에 달해 가장 시
급한 문제가 병력보충 문제였다. 며칠 후 제1훈련소로 명칭을 바꾸고 9개
대대로 편성되었으며, 1개 대대는 2천에서 2천 5백명 규모였다. 전쟁 상황
이 워낙 급하여, 모든 부대는 실전훈련의 유무를 따질 겨를도 없이 신병
들을 북한군의 노도와 같은 공격을 육탄으로 저지하고자, 최전방에 배치
하였다. 즉 입소 신병은 7일간 교육훈련을 받게 대 있었지만, 급할 때에는
2~3일간의 소총사격 훈련만 시켰고, 더 급할 때에는 사격장으로 가다가
그대로 일선에 내보내기도 하였다. 보통 제1훈련소에서 하루 500~600명
씩을 일선으로 보충했지만, 많을 때는 2,000~3,000명을 보낸 적도 있었
다. 특히 사단이나 연대를 재편하거나 신편할 때는, 보충병력이 모자라 길
거리를 막고 주민이나 피난민들 중 20~35세까지의 청장년을 징집해 보
낼 정도였다. 1950년 10월 25일 육군중앙훈련소 본부가 해체됨에 따라,
제1훈련소는 육군본부로 예속 변경되었다. 1951년 1월 22일 제1훈련소는
경상북도 대구로부터 제주도 모슬포로 부대이동하였으며, 동년 6월 17일
대통령부대표창을 받았다.1956년 1월 1일 국일명(육) 제33호에 의거, 제1
훈련소는 해체되었다.
강시종 일등병은 제1훈련소 소속으로서, 북진작전이 개시되어 38선 진
격을 앞둔, 1950년 10월 1일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지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13-6-026
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