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신광 (姜信光)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3753
  • 전몰일자 : 1952-10-13

공훈사항

강신광 하사는 1934년 1월 10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다인면(多仁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9사단 제29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9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병력과 부대확장이 절실하던 차, 서울
수복을 한 직후 1950년 10월 25일 예하 3개 연대(대전 주둔 제28연대, 공
주 주둔 제29연대, 청주 주둔 제30연대)를 기간으로 서울의 청계초등학교에
서 창설되었다.
이후 제9사단은 11월 20일까지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10
월 30일 후방지역 경계임무를 수행차 신설된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그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라북도 대둔산, 경상북도 김천·상주지구
등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선이 전
면철수하자, 사단은 1950년 10월 30일부터 12월 18일까지 대전- 대구- 원
주- 강릉- 진부(평창)로 이동하며, 제2군단으로 배속 변경된 후, 서림리-
현리- 부평리간의 38도선을 방어하고 일부 병력으로 설악산-오대산 지
역의 북한군 유격부대 및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12월 26일 제1군단
으로 배속이 변경되고, 1·4후퇴시 현리- 속사리(진부)- 춘양까지 철수한
적도 있었지만,1951년 1월 19일부터 2월 2일까지 제3군단으로 배속·변경
후 춘양- 장성- 하진부리로 진격하였다. 2월 12일에서 25일까지 중공군 2
월공세시 하진부리에서 다시 철수하고, 정선- 창리선으로 이동·방어하였
다. 그후 5월 16일부터 21일까지 현리전투에 참가하였다. 6월에는 제9사
단이 철의 삼각지대(와이오밍선)로 진출하였으며, 7월 1일부터 31일까지
김화지구를 방어하였다. 이후 포천·철원 등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및 교
육훈련을 한 후, 1951년 11월 3일부터 1952년 4월 4일까지 281·395·396·
500·343·252·358고지 등에서 고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또 4월 6일부터 9
일 19일까지 사단은 300·278·596·260·323·500·396·395고지 등에서 전초
쟁탈전 및 포로획득임무를 수행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월 15일까지 백마고지전투를 치루고 혈전 끝에
성공적으로 방어하였다.
강신광 하사는 1952년 10월 13일 백마고지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5-6-130
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