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신원 (姜信元)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636850
  • 전몰일자 : 1952-4-19

공훈사항

강신원 일등병은 1930년 2월 5일 충청남도 대덕군(大德郡) 탄동면(炭洞
面)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제7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제6사단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정면에서 공격해온 북한군 제2사
단을 격파하는 등 여타 지역에서 지리멸렬상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가
장 성공적인 방어작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횡성·원주·충주로 철수하면서
도 충청북도 음성지구에서는 동락리·무극리전투에서 한국전쟁 이후 최초
로 아군의 승전보를 기록하고, 북한군 1개 연대를 전멸시켰다. 7월 13일부
터 경상북도 문경지구(조령·이화령)에서 지연전을 전개하고, 점촌·안계·군
위·신녕으로 철수하여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는 신녕전투에 참가하
였다. 이후 북진작전에서는 경상북도와 강원도 내륙을 거쳐 춘천을 탈환
한후, 10월20일까지화천·김화·금성·회양·신고산·원산·덕원·양덕·성천·
순천으로 진격하였으며, 적진에 낙하한 미 제187공수부대와 연결하여 10
월 21일부터 26일까지 순천·개천·희천·온정·고장·초산으로 파죽지세의 공
격을 함으로써, 국군 및 UN군의 최선봉부대로서 10월 26일 한·만국경도
시인 초산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로가 차단되자, 부대는 분산되고 철수작전을
욘갖 고난 속에 전개하여 12월 12일 동두천까지 후퇴를 하였다. 1951년 1
월 전선 재조정에 따라 안성까지 철수한 후, 재반격작전을 전개하여 1951
년 4월 20일~5월 23일까지는 사창리·용문산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30일부터 11월 18일까지 백암산·동대리·금성천·949고지 등에서
미주리선방어작전임무를 수행하였다. 11월 19일부터 1952년 1월 9일까지
제6사단은 용호동 -949고지에서 미주리선 방어를 하고, 이후 3월 20일까
지 양구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그후 3월 23일부터 29
일까지 교암산- 봉화산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과 교대하였다.
1952년 3월 30일부터 1953년 3월 4일까지 제6사단은 575고지와 A·B고
지에서 전초진지쟁탈전을 전개하였다. 그후 1953년 3월 5일부터 7월 9일
까지 금성 돌출부를 계속 방어하였으며, 7월 10일부터 14일까지 중공군의
최후공세를 맞아 교암산으로부터 금성천 남안으로 철수하였다.
강신원 일등병은 교암산으로부터 금성천 남안으로 철수임무를 수행하던
중 1952년 4월 19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25-6-020
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戟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