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강억조 (姜億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병
  • 군번 : 0344888
  • 전몰일자 : 1950-8-1

공훈사항

강억조 일등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중리동(中里洞)에서 태어나, 육군에
입대하여 제1훈련소에서 복무하였다.
제1훈련소는 1950년 7월 11일 국일명(육) 제46호에 의거, 육군본부 직
할로 창설되어 초대 소장에 대령 최석(崔錫)이 보직되었으며, 동년 8월
14일부로 중앙훈련소에 제1훈련소가 배속되었다. 이때는 한국전쟁이 발발
하여 7월말까지 금강방어선이 무너지고 낙동강방어선에서 UN군과 국군은
북한군 대항하여 시간과 공간을 다투는 시점으로서, 1950년 8월 초 최석
대령을 책임자로 하여, 경상북도 대구에서 교육대라는 명칭으로 신병모집
훈련소를 급편하였다. 이때는 대구에서 경상남도 부산으로 육군본부마저
철수할 정도의 위기였으며, 전방의 병력소모는 극도에 달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병력보충 문제였다. 며칠 후 제1훈련소로 명칭을 바꾸고 9개 대대
로 편성되었으며, 1개 대대는 2천에서 2천 5백명 규모였다. 전쟁 상황이
워낙 급하여, 모든 부대는 실전훈련의 유무를 따질 겨를도 없이 신병들을
북한군의 노도와 같은 공격을 육탄으로 저지하고자, 최전방에 배치하였다.
즉 입소 신병은 7일간 교육훈련을 받게 돼 있었지만, 급할 때에는 2~3일
간의 소총사격 훈련만 시켰고, 더 급할 매에는 사격장으로 가다가 그대로
일선에 내보내기도 하였다. 보통 제1훈련소에서 하루 500~600명씩을 일
선으로 보충했지만, 많을 때는 2,000~3,000명을 보낸 적도 있었다. 특히
사단이나 연대를 재편하거나 신편할 때는, 보충병력이 모자라 길거리를
막고 주민이나 피난민들 중 20~35세까지의 청장년을 징집해 보낼 정도
였다 .1950년 10월 25일 육군중앙훈련소 본부가 해체됨에 따라, 제1훈련
소는 육군본부로 예속 변경되었다. 1951년 1월 22일 제1훈련소는 경상북
도 대구로부터 제주도 모슬포로 부대이동하였으며, 동년 6월 17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다. 1956년 1월 1일 국일명(육) 제33호에 의거, 제1훈련소
는 해체되었다.
강억조 일등병은 제1훈련소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작전이 치열하게 전개
되던 시점인, 1950년 8월 1일 정확한 장소는 확인되지 않지만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살신보국정신(殺身保國精神)을 선양하고, 후세에 교훈
으로 남기기 위하여 서울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위패번호 18-5-065
번으로 봉안하였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戰死者銘碑)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