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李福南)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27956
  • 전몰일자 : 19520619

공훈사항

이복남 하사는 1931년 4월 8일에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1년 7월 13일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복남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된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1951년 8월에 접어들면서 美 제10군단은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가칠봉 북쪽에 위치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끝내는 동 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박달고개-가칠봉-서희령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양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에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1월 23일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방어선에는 좌측 전방에 제36연대 우측 전방에 이복남 하사가 소속된 제35연대를 배치하고, 제27연대를 예비로 간성 부근 수동리 일대에 집결했다.
정면의 적은 북한군 제47, 제9사단으로서 적은 월비산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남쪽의 351고지를 비롯한 사단의 전초진지와 주저항선을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51고지 전초진지 방어를 담당한 제35연대는 주저항선에 제2대대만을 배치하고 전초진지에 제1, 3대대를 배치하여 전초진지의 방어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소규모 수색정찰 활동을 하는 등 전선은 7월 초순까지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이에 제35연대는 진지를 더욱 강화하면서 적정 탐색 및 적 침투 방지를 위한 수색정찰과 매복 작전을 지속했다. 이복남 하사는 분대원을 통제하며 351고지의 전초진지를 보강하던 중 1952년 6월 19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4-ㅇ-06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