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이복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100767
- 전몰일자 : 19510517
공훈사항
이복남 일등중사는 1924년 8월 8일에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월 14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복남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 본대는 원주에서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이후 연대는 춘천 방면의 제7연대와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7월 한 달 동안 충주-조령-함창 축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양곡동을 잇는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북한군의 8월과 9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반격을 개시했다. 제6사단은 9월 23일부터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함창-문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계속 김화-성천-순천-개천 방향으로 공격하였고, 10월 말에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타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12월 11일경에 동두천-전곡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복남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받고,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서울 창동을 거쳐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제6사단은 2월 초에 군단의 방어배치 조정으로 문막 북쪽의 판대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돌파구 확장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사단은 3월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배산-수덕산-지암리-화악산 방향으로 공격하였고, 4월 21일에 대성산-육단리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하여 사창리까지 확보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받고, 가평을 거쳐 4월 27일에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그리고 5월 16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제2연대가 전면방어로 거부하였고, 이복남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용문산의 방어진지에서 포병화력을 지원했다. 그는 5월 17일 전투에서 적의 포병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7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ㅁ-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