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李福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9473
  • 전몰일자 : 19501201

공훈사항

이복남 일병은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복남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사단은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10월 24일 오전 11시 안주에서 청천강을 도하 하여 운산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1시간 이상 격전을 치렀으나 적은 물러날 기세가 전혀 없었다. 이때 용산동 동쪽 영변 방향에서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적은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복남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10월 30일 온정을 경유하여 초산으로 공격하여 11월 1일 오후까지 공방전을 펼친 후 입석리로 이동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11월 24일 북한군 병참선의 요충인 태천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북한군은 그들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하여 교량을 파괴시켰고, 또 도로상에는 도처에 120mm 박격포탄으로 만든 부비트랩을 매설하였다. 사단 공병이 이를 제거하는데 다소 시간이 지연되었으나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저녁 무렵에는 태천을 남쪽과 동쪽에서 포위하게 되었다.
11월 28일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태천 외곽까지 진출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에 밀려 박천 북쪽의 중막동-용산동 선을 점령하였고, 다음날(29일) 박천-용산동 일대를 고수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 하였으나 계속적으로 증원부대를 투입하는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단은 축차적인 지연전을 펼치면서 박천 남쪽의 동이동으로 철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복남 일병은 1950년 12월 1일 평양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1판-1면-14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2-ㅁ-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