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李福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4726
- 전몰일자 : 19510401
공훈사항
이복남 일병은 전라북도 이리시 갈산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 직할 제25연대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8월 7일 대구에서 재창설되었다. 8월 8일 북한군 제12사단이 기계 북방까지 진출하자, 육군본부는 제25연대를 제3사단에 배속하여 안강으로 급파했다. 연대는 안강 북쪽의 445고지와 포항 북쪽의 소티재 일대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전투력이 소진되었고, 결국 8월 16일 해체되어 제26연대에 편입되었다.
제26연대는 1950년 8월 10일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곧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기계-안강전투에 투입되었다가 8월 20일 제3사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8월 17일 장사동에서 해상 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던 제3사단은 부대 정비 후 8월 20일 전선에 재투입되었다. 이후 연대는 9월 14일까지 기계 남쪽 445고지와, 형산, 운제산 전투에 투입되어 혈전을 거듭한 끝에 적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22일부터는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30일)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에는 원산을 점령 후 잔적을 소탕했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경계임무를 인계한 사단은 11월 4일 신북청으로 북상했다. 11일 사단은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사단의 선두부대가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이날 하달된 미 제10군단장의 철수명령에 따라 성진-흥남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수도사단은 제1군단에 배속되어 동해안 축선을 담당했다. 이후 연대는 1951년 4월까지 삼척-강릉-속사리-남가리-설악산 일대까지 진격하면서 강릉, 오대산, 양양 전투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용감하게 진격하다 4월 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5-ㅌ-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