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이복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1396
  • 전몰일자 : 19501120

공훈사항

이복남 일병은 전라남도 순천군 매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복남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초순, 미 제7사단은 일본에서 한반도로 투입될 전투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단은 9월 초에 부산에서 출항하여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던 미 제7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상륙훈련으로서 승선훈련과 시가지전투 훈련 등을 실시한 후 상륙함에 승선하여 인천으로 향했다. 드디어 9월 15일에 미 제1해병사단이 월미도-인천으로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미 제7사단의 9월 17일 인천에 후속 상륙하여 서울로 진격하며 저항하는 북한군 잔적들을 격멸하며 전진했다.
이복남 일병이 소속된 미 제17연대는 경인가도의 남쪽인 미 제1해병연대 우측을 책임지게 되었으며, 경인 지역에 마지막으로 상륙한 미 제31연대는 수원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미 제32연대는 9월 21일 저녁 무렵에 안양 북방 2㎞의 300고지와 영등포 남쪽 고지를 점령하여 서울ᐨ수원간 도로를 차단하였다. 미 제31연대가 9월 22일 수원비행장을 점령하여 중요한 항공기지를 확보하였다. 이후 제17연대는 관악산을 우회하여 과천-우면산 방향으로 진격하여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 방향으로 도하하여 오후 늦게 남산을 탈환했다.
미 제8군이 서부지역에서 북진작전을 실시할 때, 미 제7사단은 계속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원산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10월 6일부터 철로와 차량을 이용하여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 부산에서 10월 29일에 출항했다. 그런데 국군 제3사단이 이미 10월 10일에 원산을 점령한 관계로 미 제7사단은 11월 8일에 행정적으로 이원에 상륙하여 풍산-갑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11월 21일에 혜산진까지 진격했다. 그는 11월 20일 혜산진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제1충혼당-115실-27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ㅇ-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