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李福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7904248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복남 이병은 전라북도 이리시 주현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병은 1950년 5월경에 입대 후 제2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16연대는 청주에 주둔해 있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전개되었고, 의정부에 합류한 제16연대는 제7사단과 함께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의 침공을 막아내고자 사력을 다해 전투했다.
북한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1950년 7월 14일에 장갑차를 앞세워 풍기 읍내로 진출하였다. 이에 아군은 영주군의 안정면 동촌리에서 부석면 용암리에 걸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 결과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북한군의 남하를 10일간 저지하였고 풍기 지구 전투가 마무리 된 후 제16연대는 제8사단에 편입되었다.
이후 제8사단은 1950년 7월 29일 안동을 거쳐 포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북한군을 발견하고 저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적의 일부 병력이 우회하여 제16연대를 포위하였고 결국 제16연대가 돌파되어 제8사단은 토계 텃골 일대로 철수를 계획하였다. 이에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자 제1연대가 지원해 왔지만 북한군의 공격을 막지 못하였고 최종적으로 안동 시내로 철수하였다. 안동으로의 철수를 완료한 제8사단은 북한군의 진격을 막고자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하였는데 이때 북한군의 지휘관 다수가 전사함으로써 북한군 부대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북한군은 본래 8월 15일까지 대구를 점령할 것을 목표로 총전력을 이용해 진격해왔다. 하지만 아군의 분전으로 이에 성공하지 못하자 연장된 보급로로 인한 지원 부진과 사기 저하까지 더해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반면 아군은 모든 전선을 다시 수습하고 우세한 항공지원 아래 반격을 준비 중이었으며 제8사단이 의성지구 전투에서 1950년 8월 7일부터 무려 13일간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펼침으로써 반격을 위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이 이병은 1950년 8월 20일 북한군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그의 희생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발판과 전세를 역전하여 북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6판-3면-03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7-ㄹ-06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