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남(李福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1902597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복남 상병은 1929년 1월 18일에 경기도 포천군 포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7월 20일, 경기도 포천의 제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7사단은 제1연대를 동두천 축선에, 제9연대를 포천 축선에 배치하고 있었는데, 이복남 상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추동리(포천 서북쪽 11㎞)-사직리 간의 26㎞의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9연대는 제2대대에게 38도선 경비임무를 담당하도록 했고, 연대본부와 제1·제3대대는 의정부 북방 4km 지점인 금오리에 주둔하면서 방어준비를 하도록 했다. 연대 장병들은 1950년 봄에 주방어진지인 천주산 일대에 대한 교통호와 산병호를 구축하였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공격했을 때, 이복남 상병이 소속된 대대는 교육훈련 중 연대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주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정면의 북한군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은 30여 분에 걸친 포병사격으로 전방의 경계진지를 유린하고 전차와 보병으로 거침없이 공격했다. 북한군 선두 전차 8대는 6월 25일 아침부터 아군의 보병 화력이나 105mm 포병사격에도 끄덕하지 않고 포천 방향으로 직행했다.
이복남 상병이 소속된 제9연대는 북한군에 맞서 사격을 가하며 진출을 저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적 전차는 큰 저항 없이 오전 11시에 포천을 점령했다. 이어 1시간 뒤에 적 보병부대가 아군부대가 배치된 천주산-가랑산을 포병사격과 함께 공격했다. 오후 2시경에 연대 주저항선이 무너졌으며, 통신마저 끊겨 각 대대 및 중대 단위로 분산하여 철수하면서 큰 피해를 받았다. 연대는 오후 4시경에 태릉으로 철수하여 육사 교장의 지휘를 받으며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하여 퇴계원 방향에서 공격하는 적을 저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남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9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1-ㄲ-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