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길(李福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46978
  • 전몰일자 : 19530123

공훈사항

이복길 이등중사는 1930년 1월 15일 충청남도 청양군 남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10월 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이등중사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연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전 전선에서 소강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수색 및 정찰전, 간헐적인 포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주저항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 정면에는 중공군 제68군 예하 제203사단이 배치되었고, 아군 전초진지에 대한 위력수색과 소규모 야간습격을 수시로 반복하고 있었다. 한편, 제3사단은 739고지-973고지-720고지-440고지를 연결하는 주저항선에 제22연대와 제23연대를 배치하고, 제18연대를 사단 예비로 편성하고 있었다. 9월 28일 밤 중공군은 739고지와 572고지를 비롯한 제22연대 주저항선 일대에 강력한 포격을 집중한 후에 대대 규모의 적이 공격해 왔다. 연대는 치열한 교전 끝에 2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739고지를 탈취당하고 말았다.
사단은 9월 30일 예비인 제18연대를 투입하여 역습을 개시했다. 연대는 9월 30일과 10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역습을 전개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이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2연대 제1대대가 다시 역습에 투입되었고, 대대는 적 자동화기 거점을 수류탄으로 제압하며 돌격을 감행한 끝에 마침내 739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는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1월 23일 소규모 적이 침투공격을 해오자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교전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길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6116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ㅇ-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