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기(이복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124846
  • 전몰일자 : 19530302

공훈사항

이복기 하사는 충청남도 대덕군 소축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9월 중순 제1연대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예하부대로 배치되었다.
제1연대는 1946년 1월 15일 경기 양주에서 창설되어, 1949년 5월 12일 수도사단에 예속되었다. 수도사단은 동년 6월 10일부로 제7사단으로 개칭되어 동두천 축선의 38도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미약한 병력과 장비로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어 제1연대는 제8・1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제1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이복기 하사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 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이복기 하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고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였다. 1952년 10월 6일부터 4일간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에 재개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 하사와 연대장병들이 사력을 다해 방어함으로써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 연대는 25일 주저항선을 제8사단에게 인계하고 경기도 양주로 이동해 미 제8군 예비로 전환되었다. 이복기 하사를 비롯한 제1연대 장병들은 11월 3일부터 9주간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을 실시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다가 3월이 되자 중공군의 전초진지 공격에 대하여 제한된 규모이지만 집중적인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 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복기 하사는 1953년 3월 2일 김화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27-ㅅ-01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