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기(李福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16416
  • 전몰일자 : 19521204

공훈사항

이복기 하사는 1926년 3월 11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38도선 일대에서 피·아간에 전선이 교착된 시점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2년 3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군과 유엔군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감제고지 확보를 위해 고지쟁탈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이후 제22연대는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방어하면서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9월 28일 밤 중공군은 739고지와 572고지를 비롯한 제22연대 주저항선 일대에 강력한 포격을 집중한 후에 대대 규모의 적이 공격해 왔다. 연대는 치열한 교전 끝에 2차례에 걸친 적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739고지를 탈취당하고 말았다.
사단은 9월 30일 예비인 제18연대를 투입하여 역습을 개시했다. 연대는 9월 30일과 10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역습을 전개했으나, 적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이 하사가 소속된 제22연대 제1대대가 다시 역습에 투입되었고, 대대는 적 자동화기 거점을 수류탄으로 제압하며 돌격을 감행한 끝에 마침내 739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는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하사는 12월 4일 소규모의 적이 침투하자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싸우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23묘역-3판-744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ㅎ-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