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기(李福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35190
  • 전몰일자 : 19521006

공훈사항

이복기 이등중사는 경상북도 달성군 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이 이등중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20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카투사(KATUSA)로 선발되어 미 제25사단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첩보수집, 편의대 활동, 포로신문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사단의 작전에 기여하다 11월 중순경 제3사단 제18연대로 전속되었다. 연대는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하여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 부령까지 진출하여 한·중 국경선을 목전에 두었으나, 이날 중공군의 참전으로 흥남으로 철수했다. 12월 10일 연대는 제3사단과 함께 흥남에서 해상 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고, 12월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6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고성 일대에서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강원도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연대는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두고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973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이 이등중사는 10월 6일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 정찰대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ㄴ-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