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균(李福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K1104693
  • 전몰일자 : 19500929

공훈사항

이복균 이병은 1919년 6월 10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으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던 1950년 7월 하순,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분류되어 미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복균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20일, 미 제1기병사단은 왜관 일대의 주요 감제고지에 배치되어 대구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통제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었다. 이후 미 제1기병사단은 8월 31일부로 국군 제1사단으로부터 다부동지역을 인수하여 대구로 향하는 주요 축선인 1번 국도 축선과 다부동 축선을 동시에 담당했다. 북한군은 9월 2일 오후 6시를 기하여 대구 북방에서 총공세(일명 9월 공세)를 실시했다. 그가 소속된 미 제1기병사단 장병들은 격렬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고 낙동강 서쪽으로 격퇴했다. 북한군은 9월 12일 이후에는 공격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방어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9월 16일부로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인천상륙작전부대와 연결한 후 지대 내 북한군을 격멸하고자 했다. 한편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된 것을 아직 모르고 낙동강 대안에서 완강하게 저항했다. 이복균 이병이 소속된 미 제7기병연대는 몇 번의 도하공격을 시도한 끝에 9월 20일에 최초로 도하공격에 성공했다. 이후 사단은 미 제7기병연대를 중심으로 777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신속히 진격하도록 했다. 이에 777특수임무부대는 9월 22일에 다부동을 출발하여 낙동리-상주-보은-청주-천안-오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9월 26일 22시경에 미 제7사단 제31연대와 오산 북방 6Km 지점에서 합류했다. 그는 9월 26일 전투에서 미군 장병들과 함께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경남 동래에 위치한 제31정양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안타깝게도 회복하지 못하고 9월 29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균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5묘역-1판-221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ㅍ-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