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균(李福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8801414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복균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0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만을 마친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복균 이등중사는 월비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가 소속된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9사단으로부터 월비산을 탈취하는 전과를 거두고, 1951년 11월 26일 여수로 이동하여 호남지구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1952년 초반까지 쌍방 간에 합의되었던 임시휴전선이 백지화됨에 따라 회담의 추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후방지역 공비들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후방치안의 확보가 점차 어려워지자 이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2월부터 백아산, 모후산, 조계산 지구에 대한 소탕작전과 반복수색을 전개하였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2년 7월과 8월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전투에 참여해 북한군과의 공방전에서 북한군을 격퇴하였으나 장병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9월 6일, 북한군이 맹렬한 공격준비사격을 가한 후 고지 좌우측 계곡으로 공격함에 따라 수도고지가 함락되었다. 이어 9월 9일 고지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연대는 공군의 근접지원과 포병의 지원 아래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복균 이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3년 1~2월에는 전력증강과 진지공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이등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5월 14~16일 금성 서남쪽 7㎞ 지점 직목동 일대에 있는 샛별고지(470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또한, 5월 23~24 금성 서남쪽 4㎞지점에 있는 회고개 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쳐 금성 돌출부 일대의 주저항선을 고수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와 장병들은 6월까지 금성돌출부 서측의 번개고지, 샛별고지, 무명고지 전투를 수행한 후, 7월 13일부터 금성 지구에서 중공군을 맞아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이 이등중사는 수도고지-지형능선전투 등 김화 및 금성 지구의 고지쟁탈전에서 모범을 보이며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다.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복균 이등중사는 1953년 7월 17일 강원도 김화지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균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6판-5면-1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8-ㅍ-06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