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규(李福圭)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03776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복규 하사는 1932년 12월 12일에 경상북도 경주군 강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복규 하사가 부대로 배치되었던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12월 11일에 전곡-동두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수색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거나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했다.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감행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대적하여 최대한 타격을 가했으나 중과부적으로 1951년 1월 1일 새벽에 방어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야간에 창동으로 집결했다. 이후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했다.
제6사단은 2월 초에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으며, 이곳에서 2월 12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계속 공격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사창리 일대에서 큰 피해를 받고 4월 23일 야간까지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다. 이복규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이 곧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사단에 보고했으나, 사단에서는 대응할 시간이 늦어 철수했다. 이에 수색소대도 적진에서 후방을 교란하며 철수하던 중, 4월 23일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2면-26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ㅈ-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