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규(李復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3108
  • 전몰일자 : 19510220

공훈사항

이복규 중위는 경상남도 울산 방어진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중위의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중위는 1950년 10월경 종합행정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임관하여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제9사단 제30연대에 편입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총반격작전으로 전환하였다. 아군이 1950년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는 전황 속에서, 제9사단은 10월 25일에 서울에서 제28·제29·제3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고 창설되었다.
한편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예기치 않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은 청천강 선으로 투입되었다. 따라서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1950년 11월 15일에 제9사단은 전북 금산군 남이면에서 1개 대대 규모의 공비를 소탕했고, 동년 11월 20일에는 상용리에서 적 200여 명을 포획 섬멸했다.
그리고 11월 23일에는 대둔산 대평리, 삼왕리를 포위 공격하여 산속 깊숙이 은거하고 있던 적을 소탕하고 적의 근거지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다.
제9사단은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제3군단에 배속되어 전북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작전에 투입되었으며, 대둔산 지구 및 충남 일대를 담당하였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사단은 북한군 유격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적의 남하를 저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 중위는 적탄에 맞아 후송되었으나, 1951년 2월 20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규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7-ㅋ-08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