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복규(李福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370158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복규 일병은 강원도(現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광복 후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1949년 7월 하순경 제5사단에 현지 입대 후 사단사령부로 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1948년 4월 29일 경기도 고양에서 최초 제5여단으로 창설되었다가 1949년 5월 사단(제3, 15, 20연대)으로 승격했다. 그 후 사단은 1950년 1월 25일에 제3연대를 예속 해제하고 제7사단으로 편입시켰다.
이복규 일병 부대에 배치될 무렵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고, 후방지역에서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소요사태와 남파된 북한의 유격대에 의한 습격·파괴활동으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1949년 말부터 북한의 남침징후가 높아짐에 따라 육군본부는 경계강화 지시를 수차례에 걸쳐 거듭 하달했다. 제5사단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사단 사령부를 전라남도 광주에, 제15연대를 전라북도 전주에, 제20연대를 광주 송정리에 두고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사단 예하 제15, 20연대 각 제3대대를 경기도 문산 지역으로 이동하여 제1사단의 예비대로서 문산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제1사단 예하의 2개 대대가 공격하는 것을 격퇴했다. 이후 파주 일대 봉일천 전투에서 제1사단과 여기에 배속된 제5사단 제15연대(-)와 제20연대 3대대는 1950년 6월 28일까지 적을 저지했다. 그러나 서울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접한 뒤 야간에 한강 행주나루터에서 민간 선박을 활용하여 철수했다.
이복규 일병이 소속된 사단(-)는 6월 27일부터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미아리 지역에 저지선을 구축하여 방어에 임했다. 하지만 의정부를 방어하던 제7사단과 문산을 방어하던 제1사단이 철수하자 6월 28일 한강 남쪽으로 철수했다.
한강 이남으로 철수를 완료한 제5사단은 6월 28일 야간부터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예비로 전환되어 수원 일대에 집결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이복규 일병은 사단 사령부 소속으로 미아리 저지선에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지연시키는데 기여했으나, 6월 28일 분대원과 함께 한강을 건너 철수하던 중 적 포격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복규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0-ㅎ-04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