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형(李保珩)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02680
  • 전몰일자 : 19510825

공훈사항

이보형 하사는 1927년 10월 10일에 제주도 북군 구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보형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0월 중순, 제11사단은 9월 25일부로 대구에서 사단본부를 편성하고 제9연대, 제13연대, 제20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했다. 당시 제9연대는 진주에 지휘소를 두고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해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연대는 점점 작전지역을 넓혀 11월부터는 남원, 광양, 단성 일대로 확대했다. 그리고 1951년이 되면서 함양, 광양, 거창 일대로 작전지역을 이동하며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여 공비들이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보형 하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대구·경산 일대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한 후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이후 제11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속초-간성 선에서 저지하다가 4월 25일 철수하여 양양 북방의 대포리를 좌우로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의 공격이 5월 7일에 멈추었고, 사단은 바로 반격하여 5월 11일에 마등령-저항령-989고지를 탈취했다. 얼마 후 5월 16일에 북한군의 대규모 공격이 다시 시작되자, 사단은 마등령 일대에서 철수하여 대관령-강릉 선에서 적의 진출을 저지했다.
제11사단은 5월 22일부터 반격작전을 개시하여 강릉-양양-간성 축선을 따라 공격하여 6월 중순까지 향로봉-건봉산을 연하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장병들은 공세행동을 중지하고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 활동에 집중했다. 이 시기에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행동을 하도록 각 부대에 명령했다. 이보형 하사가 소속된 제9연대는 8월 17일에 방어진지 전방에 아군 지역을 감제하고 있는 884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8월 24일까지 계속된 공방전 끝에 결국 탈취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8월 2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형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ㅂ-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