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현(李輔賢)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10422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보현 하사는 1928년 12월 12일에 충청남도 논산군 부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1월 20일, 강원도 강릉의 제1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강원도 원주의 제6여단이 1949년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될 때, 그는 제10연대에서 제6사단 통신대로 전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홍천에 위치하며 제2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제2연대 장병들은 홍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6월 30일에 사단에 합류하여 원주-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북한군의 8월 및 9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함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는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하고, 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북진하여 10월 19일에 성천을, 10월 23일에 희천을 점령했다. 당시 이보현 하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사단과 연대 간의 통신망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와 11월 24일 시작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됨으로써 실패하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 장병들도 초산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고, 12월 초에 북창-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하여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3차 총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인접 부대들이 돌파되자 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철수했다. 이때 이보현 하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사단과의 통신망 유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적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다. 이날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1판-2면-1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ㄱ-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