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채(李輔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1049
  • 전몰일자 : 19511010

공훈사항

이보채 일병은 전라북도(現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이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작전을 진행 중인 1950년 10월 초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이보채 일병이 훈련소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2훈련소는 신병교육에 주력하면서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하고 있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신병교육을 위해 1950년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고,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같은 날 부산에서 제2훈련소가 제1, 5교육대 병력과 제9교육대 일부 병력을 기간으로 창설되었다. 뒤이어 8월 22일 제3훈련소가 구포에서, 제5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서 각각 창설되었다.
제2훈련소가 위치한 부산 지역은 북한군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당시 미군의 지원물자가 대부분 부산항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고, 부산에는 각종 지원부대와 시설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선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2훈련소는 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보채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서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1년 10월 10일 훈련소 인근에 게릴라들이 출몰했고, 훈련소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보채 일병은 격멸조로 편성되어 색출된 게릴라와 교전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채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6-ㄲ-10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