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윤(李保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103450
  • 전몰일자 : 19500722

공훈사항

이보윤 일병은 강원도 춘성군 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정치 및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9월 27일,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에 강원도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남침을 감행했을 때, 제19연대 장병들은 원주에서 아침 7시를 기해 비상경계에 돌입했다. 이보윤 일병이 소속된 제3대대 장병들은 선발대로서 오후 1시에 차량에 탑승하여 원주에서 출발하여 저녁 8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제19연대 본대는 기차로 원주에서 출발하여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와 협조로 소양강 북쪽의 진지를 점령했다가 이날 오후에 소양강 선으로 철수했다.
이보윤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6월 27일 새벽 5시에 북한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전개했다. 이때 사단 명에 의거 오전 10시에 현 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차량 이동으로 오후 7시 30분에 홍천 북방의 말고개로 투입되어 제2연대를 증원했다. 이곳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 4시에 홍천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제19연대는 7월 1일 밤 12시에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이천지역으로 투입되어 7월 4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연대는 이날 정오부터 철수하여 진천 북쪽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7월 9일에 진천 지역을 수도사단에게 인계하고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복귀했다.
제6사단은 7월 12일 아침 5시부터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 방어에 돌입했다. 이보윤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조령에 배치되어 7월 14일부터 문경-점촌 일대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에 맞서 지연전을 실시했다. 제6사단은 7월 16일에 문경에서 철수하여 영강에서 하천선 방어에 돌입하여 7월 22일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날 영강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윤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5묘역-12판-113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8-ㅋ-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