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우(李補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2018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보우 일병은 경상북도 경주군 노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 중인 상황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국군은 9월 16일 총반격으로, 22일부터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제3사단은 23일부터 추격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은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영덕, 울진, 삼척, 강릉을 차례로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길주-백암으로 북진하여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30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를 개시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사단은 적의 공격에 맞서 횡성, 제천, 원주, 하진부리, 현리 일대를 오르내리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른 끝에 1951년 3월 하순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현리-하서림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유엔군은 4월 3일부터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확보를 목표로 러기드작전(Operation Rugged)을 개시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4월 20일까지 강원 인제군 한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22일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정면에는 북한군 제6사단이 투입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4일 동안 치열한 백병전을 전개한 끝에 기어이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 상의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하자, 장병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부대 이동이 빈번한 상황에서 예하부대에 적시적인 병기정비 지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일병은 이 전투에서도 병기정비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아 5월 1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7판-1면-0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7-ㅈ-01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