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우(이보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33695
  • 전몰일자 : 19510108

공훈사항

이보우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단양면 국전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1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24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보우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하순, 미 제24사단은 10월 8일부로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건너 38도선을 돌파하여 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0월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했고, 10월 20일에 평양에서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2일에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부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개시했다. 당시 이보우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을 거쳐 10월 27일에 정주까지 진격했다. 이때 우측의 국군 제2군단이 적유령산맥 일대에 은밀히 숨어 있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었다. 이에 미 제24사단은 측방이 차단되는 위험을 느끼고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 규모를 과소평가한 상황에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11월 24일에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미 제24사단은 선천까지 적과 접촉 없이 진출했으나, 이번에도 우측에서 전진하던 부대들이 먼저 후방이 차단되었다. 이에 사단은 후방이 차단될 것을 우려하여 다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다. 12월 3일에 평양방어선을 점령했다가 12월 6일에 평양에서 철수하여 12월 13일에 38도선 상의 김화-포천-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다.
이보우 일병이 소속된 미 제24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주공을 서울로 지향하고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다. 사단은 중공군의 공격을 맞아 정면 대결보다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해 방어진지에서 철수하기로 하고,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면서 철수하였고, 1월 4일에 의정부에서 서울을 거쳐 장호원 일대로 이동하여 양평 서측의 양자산(704고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는 1월 4일에 의정부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1월 8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8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ㅍ-1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