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옥(李寶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3499
  • 전몰일자 : 19510105

공훈사항

이보옥 일병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던 1950년 9월 하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1훈련소에 배치되었다.
이보옥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당시에는 정부와 국군 및 유엔군 지휘부가 대구에 집결되어 있었다. 국군은 낙동강방어선을 사수하고, 반격하기 위해서는 병력보충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에 따라 국방부에서는 신병교육을 목적으로 대구에 제1훈련소를 창설하게 되었다. 제1훈련소는 교육대와 보충대로 편성되어 군의 기초적인 교육훈련 및 병기조작과 전술훈련을 실시하는 등 신병양성을 위한 교육훈련에 주력하는 한편 대구지역 향토방위작전도 병행하였다. 이때 대구 위기를 실감한 육군본부는 후방근무지원부대인 본부중대, 근무중대, 군악대 및 보충대까지 동원하여 대구 근교에 배치하고, 제2훈련소의 국군 신병 1개 대대를 미 제1기병사단 예하 제8기병연대 후방의 도덕산 일대에 배치하여 다부동-대구축선을 방어하였으며, 이후 이보옥 일병과 장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낙동강 선에서 방어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보옥 일병과 장병들은 강력한 방어 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공세를 꺾었으며, 9월 중순부터는 공세로 전환하여 반격작전에 돌입,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해 한・만 국경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 일병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하였고, 곧이어 제2차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38선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은 1951년 초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하였다. 중부전선과 중동부전선에서는 3차 공세 개시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게 북한군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연막차장을 실시하였고 항공관측에서도 대병력의 남하가 자주 목격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보옥 일병은 중공군의 공세에 따른 방어 작전에 참여하여 임무를 수행하다 1951년 1월 5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옥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98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4-ㄱ-1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