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영(이보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00959
  • 전몰일자 : 19500822

공훈사항

이보영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한군에 밀려 소백산맥 선까지 철수하자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7월 중순경 제3교육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소백산맥 선에서 지연전을 실시하고 있었고, 사단은 영덕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7월 24일 제22연대가 제3사단으로 원대 복귀함에 따라 사단의 전투력이 크게 증강되었다. 이에 사단은 유엔 해·공군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지·해·공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다시 공격을 개시했고, 영덕을 사이에 두고 적과 백병전이 거듭되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8월 2일 마침내 영덕을 탈환했다.
이 무렵 제11포병대대와 독립 제2대대가 사단에 배속되어 전투력이 대폭 증강되었다. 한편 북한군 제5사단은 40% 이상의 병력 손실을 입고 영덕 북방 산간 계곡으로 은신하여 부대정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8월 6일 전투력을 회복한 북한군 제5사단이 야습을 감행했고, 사단 장병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부상자가 증가하고 탄약마저 고갈됨에 따라 영덕을 포기하고 오십천 남방 고지를 점령하여 8월 9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8월 11일 북한군 제12사단 일부 병력이 부대 간격을 이용, 침투하여 포항을 점령함에 따라 강구에 있던 사단은 후방이 차단당하면서 고립되었다. 적 제5사단은 사단을 강력히 압박했고, 사단은 강구 남단에서 장사동 남쪽 11km 지점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교두보를 구축하여 급편방어 편성을 했다.
적의 압박이 가속화되자 사단은 미군 해·공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462고지~봉황산~구계동을 잇는 방어선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해상 철수 준비를 했다. 8월 17일 사단은 미 공군과 해군의 엄호하에 장사동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이 일병은 수색대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언제나 앞장서서 적진에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해오거나 공방전을 벌여 왔다. 그는 8월 16일 장사동 교두보에서 적의 공격을 끝까지 막아내며 진지를 지키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2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98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2-ㅂ-04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