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영(李輔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703782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보영 이등상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조국은 분단되어 있었고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시기에 그는 군 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7월 30일에 청주군 사천면의 제7연대로 입대했다가 동년 10월 28일부로 경기도 시흥에서 창설된 제17연대에 창설 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보영 이등상사가 제17연대로 전속된 후, 제17연대는 1949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있다가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비 임무를 인수했다. 이후 국군은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줄어들자 1950년 3월 1일부로 옹진지구전투사령부를 해체하고, 좌측에서 방어하던 제18연대마저 옹진반도에서 철수시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로 복귀시켰다. 이로써 옹진반도에는 제17연대만 남아 방어하게 되었다.
이보영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옹진반도에서 38도선 경계 및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부근에 집결시켰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기습남침을 개시했으며, 북한군 제6사단 1연대와 제3경비여단은 이날 옹진반도에서 포격과 동시에 전면적인 공격을 실시하여 아군의 전방대대 방어진지를 양익 포위하려 했다.
연대장병들은 38도선에서 이전의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적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적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연대는 전투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하에서 용감히 싸웠으나 오전 7시에 옹진 정면이 돌파당하게 되었고, 이에 연대장은 예비대인 제2대대를 투입하여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자 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6사단 제14연대가 취야-강령 국도를 향해 공격하여 돌파함으로써 아군 방어지역은 오후 1시부터 동서로 양분되고 말았다.
연대장은 오후 2시에 강령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보영 이등상사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장병들을 인솔하여 강령을 거쳐 부포항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철수하는 아군을 추격하여 섬멸하려는 기세였다. 이날 그는 중기동 일대에서 철수부대를 엄호하기 위해 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영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2면-26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ㅋ-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