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영(李輔瑛)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402716
  • 전몰일자 : 19510223

공훈사항

이보영 이병은 1931년 7월 3일에 전라북도 김제군(現 김제시) 죽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초순경 제5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보영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많은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철수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1950년 12월 5일경 전방지역으로 투입되어 17번 국도상의 춘천에 배치하여 엄호작전을 실시한 후, 12월 10일부로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를 실시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중공군은 1월 1일 새벽에 대규모 공격(제3차 공세·신정공세)을 개시하여 연대의 후방을 차단하였으며, 1월 2일 밤에는 좌인접 제2사단 지역을 돌파한 적이 후방으로 진출함으로써 퇴로를 이중으로 차단하면서, 사단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박만영 일병은 부대원들과 함께 포위망을 돌파하여 가평을 거쳐 문막 동쪽으로 이동하여 방어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인 이보영 이병이 소속된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했다. 이로써 사단은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2월 9일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여,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강원도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횡성 일대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주천리 일대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보영 이병은 1951년 2월 23일 영월 일대 주천리 방어진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북한군과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영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4판-7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ㅍ-043)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