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영(李保永)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40213
  • 전몰일자 : 19500819

공훈사항

이보영 상병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23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보영 상병이 소속되어 있던 수도사단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과 동시에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하의 제3연대와 제18연대를 의정부지구에 투입하고, 이 연대들을 동일부로 제7사단으로 일시 배속 전환시켰다. 사령부는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강선 방어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 3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 수도경비사령부는 1950년 7월 5일 수도사단으로 개칭함과 동시에 제1연대를 배속시켰다. 사단은 7월 6일 진천지구 전투, 7월 13일 청주 전방 미호천 전투, 14~16일 청주 남쪽 고은리 전투를 수행하고, 7월 17일 보은에 도착하였다. 연대는 다시 철수하여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형성 시 의성 동쪽 길안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보영 상병과 사단 병력은 8월 9일부터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유격부대인 제766부대의 해체된 병력으로 증강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13일 안강에 도착하여 전날부터 제17연대가 육전대와 함께 안강 북쪽고지로 공격을 개시하여 격전 중이던 제17연대 좌우측고지로 진출하여 진지를 점령하였고, 17일 저녁 기계 남쪽고지를 탈환한 후 기계를 향해 전진하였다.
이 상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나 이보영 상병은 1950년 8월 19일 기계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며 용감히 싸웠으나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영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6판-2면-16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ㄴ-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