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양(李輔梁)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1178
  • 전몰일자 : 19500830

공훈사항

이보양 하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1949년 7월 중순에 서울 용산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제17연대는 동년 11월 15일에 옹진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당시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부근에 집결시켰다.
이보양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분산되었고, 다음날 인천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중순에는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1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획득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계속되던 후퇴 상황에서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크게 기여했다며 연대 전 장병을 1계급 특진시켰다. 연대는 7월 말에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한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 다시 연대는 수도사단으로 배속되어 8월 9일 야간에 기계-안계지역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당시 적 제12사단의 일부 병력이 포항 북방의 소티재에서 포항으로 진입할 태세를 보이고, 1개 연대는 도음산∼236고지∼227고지∼경주로 연결된 능선 축선을 지향하여 안강·양동 부근까지 진출하는 등 기계지구의 전황이 급변하였기 때문이다.
이보양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8월 11일 아침 안강에 도착하여 포항지구전투사령부의 지시를 받고자 했으나 적정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교신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밤 10시를 기해 양동 일대를 공격하여 12일 아침에는 최종 목표인 145고지와 236고지를 탈환했다. 이후 연대는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기계-안강 지역을 8월 말까지 사수했다. 그러나 그는 8월 30일에 적의 공격을 받고 전투 중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양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6-ㅊ-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