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식(李寶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2881
  • 전몰일자 : 19500720

공훈사항

이보식 일병은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2월 초순, 전남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20연대는 호남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으로 침략했을 때, 육군본부는 방어계획에 의거 전라남도 광주에 지휘소를 둔 제5사단을 모두 서울 이북 지역으로 출동시켰다. 이보식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6월 25일 새벽에 지리산 및 백운산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하다가 중단하고, 6월 26일에 긴급히 송정리역에서 출발하여 27일 오전 7시에 서울에 도착했다. 당시 제5사단장은 6월 27일에 미아리 좌측의 103고지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0연대장에게 예하 제1대대 및 제3대대, 그리고 제15연대 2대대를 통합 지휘하도록 했다. 연대는 6월 27일 오후에 적 전차 20대가 접근하는 것을 격퇴시키기도 했으나, 6월 28일 새벽에 적 전차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우회 공격함으로써 미아리 방어선은 붕괴되었다.
이후 제20연대는 한강을 도하하여 한강방어선에서 혼성 제3대대에 소속되어 노량진 부근 수도고지 일대에 배치되었다. 미군 폭격기의 지원과 한강이라는 장애물을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월 4일에 적 전차 4대가 경부선 철교에 대한 보수를 끝내고 한강교를 건너옴으로써 한강방어선마저 붕괴되었다.
제5사단은 7월 5일 재편성 시에 해체되고, 이보식 일병이 소속된 제20연대는 제2사단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그는 제2사단과 함께 진천으로 이동하여 7월 8일에 161고지(진천 남쪽 3km)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했고, 7월 14일에는 문의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 제2사단의 진출을 7월 18일까지 지연시켰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7월 20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2-ㄴ-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