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술(李輔述)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313255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보술 하사는 잔라북도 김제군 성덕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6월 초순에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1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보술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2사단은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하여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를 잇는 방어진지에서 진지강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0월 14일에 군단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에 중공군 제15군은 바로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여 저격능선 일대에서는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11월 24일까지 6주 동안 벌어졌으며, 결국 제2사단이 저격능선을 다시 점령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1953년 여름에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고지)와 화살머리고지(281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1953년 6월 중순 2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휴전협상이 조인될 전망이 짙어지자, 공산군은 접촉선 상의 주요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전 전선에서 공세를 감행했다. 중부전선의 철원평야에서는 중공군 제73사단 주력이 6월 29일 밤에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공격했다. 당시 제32연대가 화살머리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는데, 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보술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 장병들은 6월 30일 오전 7시에 화살머리고지(281고지) 일대에 역습을 실시하여 진지를 회복했다. 중공군의 저항은 격렬하였고 전투는 매우 처절하여 피아간에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러한 전투행위는 7월 1일까지 계속되어 화살머리고지를 탈취했고, 방어진지를 제32연대에 인계한 후에 예비로 전환하여 부대정비를 실시했다. 이후 중공군은 7월 6일 제2차 공격을 감행하여 다시 탈취했으나, 사단의 예비였던 제17연대가 다시 역습하여 5일간의 격전 끝에 7월 11일에 고지를 재탈취했다. 그는 마지막 공격일인 7월 11일에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7월 16일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6859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02판-4면-28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ㄱ-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