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선(이보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07299
  • 전몰일자 : 19511201

공훈사항

이보선 일병은 1931년 6월 5일에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격퇴하고 조용히 반격을 준비하던 1951년 4월 9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보선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무렵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사창리에서 큰 피해를 받고 용문산 일대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7연대는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현 화천수력발전소)까지 진출했다.
제6사단은 철의 삼각지대인 김화 및 철원을 확보하기 위해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6월 10일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취봉을 확보하고, 15일에는 백암산까지 진출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함으로써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연하는 선을 점령했다. 이후 전선은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군사력 증강에 노력을 집중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각 부대별로 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 활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 전방의 등대리 부근에 위치한 819고지를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9월 21일부터 28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탈취했다. 더 나아가 금성천 부근의 중공군 제67군단을 격멸하고 금성천 분지를 확보하기로 하고, 10월 13일에 공격을 개시했다. 이후 10월 21일까지 9일 동안 중공군을 대파하고 교암산-송설리-송동리까지 진출했다. 이보선 일병은 10월 21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서울에 위치한 제6수도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곳 병원에서 의료진들에 의해 정성스런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51년 12월 1일에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126-ㅊ-09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