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선(李輔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55160
  • 전몰일자 : 19520716

공훈사항

이보선 일병은 1928년 3월 26일 전라북도 김제군 남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1년 1월 초순에 경남 진해에서 창설된 육군포병학교로 입교하여 포병과 관련된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육본 직할부대인 포병단에 배치되었다가 제6사단을 직접 지원하는 제1포병대대로 전속되었다.
포병은 7월 5일 부대 재편성과 제1군단의 창설에 따라 포병 제1·3·5·6·7대대가 해체되고 제1야전포병단이 창설되었으며, 동 단 예하로 제10·11·16·17·18·50대대가 창설되었다. 포병대대들은 육본 통제에 따라 위급한 축선에 우선 지원되다가, 9월 10일부로 제1포병단에서 각 사단으로 예속이 변경되었다. 이때 제1포병대대는 제7사단에 예속되었다.
이보선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인 1951년 1월 8일 포병대대는 영월 북서방에 배치되었다. 중공군은 1951년 2월 12일에 전 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실시했고, 이때 사단은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돌파구 확장을 저지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후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작전을 개시하여 4월 6일에 화악산 일대(지암리 부근)까지 진출하고, 21일에는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차 공세(일명 4월 공세)로 가평을 거쳐 용문산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보선 일병이 소속된 포병대대는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전투에서 강력한 화력지원으로 격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제6사단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5월 말에 화천을 점령하고, 6월 중순에 취봉을 거쳐 적근산까지 진출했다. 이후 7월부터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포병대대는 사방거리 일대에 포진지를 설치하고 화력지원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일병은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도 나라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보선 일병은 1952년 7월 16일 철원 부근 전투에서 방열훈련을 실시하다가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7묘역-1판-201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7-ㅇ-09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