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보갑(이보갑)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12260
  • 전몰일자 : 19501104

공훈사항

이보갑 일병은 1930년 9월 29일 경상북도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9월 공세 때 9월 6일부터 13일까지 영천 전투에 투입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을 격멸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조국을 지켜내는 데 크게 기여했고, 대통령 부대표창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9월 말 문경으로 북상했다. 이후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7일 서울 청량리에 도착했다.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연대는 김화를 거쳐 11일 평강에 진출하여 잔적소탕을 한 후에 제8사단을 후속하여 마식령산맥을 넘어 17일 곡산에 도달했으며, 제8연대는 수안까지 진출했다. 10월 20일 제1사단과 제7사단 예하의 제8연대가 평양을 탈환하자, 사단은 21일 그 북방의 기림리, 노산리 일대까지 진출하여 작전을 소탕한 후,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었다.
10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된 사단은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집결 후, 다음 날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 배치되었다. 11월 3일 사단은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사단 장병들은 7일까지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사단이 비호산을 확보함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전투에서 수색중대는 사단 측방 방호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일병은 수색병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1월 4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보갑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17-ㅋ-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