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秉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12698
  • 전몰일자 : 19511120

공훈사항

이병희 하사는 1930년 9월 1일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8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포항, 형산강 일대에서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한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 위기를 극복하고 총반격 태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계기로 제3사단은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강릉(30일)을 탈환하고, 10월 2일 38도선을 돌파하여 일일 평균 24km의 속도로 북진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 상륙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로 이동하여 제5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중순 가칠봉 일대 진지를 미 제7사단에 인계하고, 육군본부 직할로 전환되어 양구 일대의 파로호 남안에 배치되어 부대정비를 하면서 북상하는 잔적을 소탕했다. 이 하사는 11월 20일 잔적 소탕작전에서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6면-2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ㄴ-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