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炳喜)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781
  • 전몰일자 : 19500914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경상남도 충무시 향남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이 전개되었고, 의정부에 합류한 제16연대는 제7사단과 함께 북한군 제1군단 예하 제3사단과 제4사단, 제105전차여단의 침공을 막아내고자 사력을 다해 전투했다.
북한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1950년 7월 14일에 장갑차를 앞세워 풍기 읍내로 진출하였다. 이에 아군은 영주군의 안정면 동촌리에서 부석면 용암리에 걸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 결과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북한군의 남하를 10일간 저지하였고 풍기 지구 전투가 마무리 된 후 제16연대는 제8사단에 편입되었다.
북한군은 본래 8월 15일까지 대구를 점령할 것을 목표로 총전력을 이용해 진격해왔다. 하지만 아군의 분전으로 이에 성공하지 못하자 연장된 보급로로 인한 지원 부진과 사기 저하까지 더해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반면 아군은 모든 전선을 다시 수습하고 우세한 항공지원 아래 반격을 준비 중이었으며 제8사단이 의성지구 전투에서 1950년 8월 7일부터 무려 13일간 지연전을 성공적으로 펼침으로써 반격을 위한 준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8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제8사단은 북한군이 영천을 점령하려는 움직임을 파악했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로 적이 영천을 점령할 경우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붕괴될 수 있고, 부산이 위협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에 제8사단은 남, 서, 북쪽의 3개 방면으로 나누어져 공격을 개시하였고 1950년 9월 5일부터 13일간의 공방전을 통해 북한군을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한 데 더불어 적 제15사단의 전차 및 화포 대부분을 파괴하고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9월 14일 패주하는 잔적을 추격하다 적의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에서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6판-4면-17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ㅎ-03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