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柄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1135
  • 전몰일자 : 19500815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1931년 2월 8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은 창설 초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경비 임무와 교육훈련에 솔선수범 앞장섬으로써 육군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의정부 축선에 배치되었던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사단 장병들은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분전했으나,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전쟁 개시 첫날인 6월 25일 포천이 전차를 앞세운 적에게 함락되고, 6월 26일에는 의정부마저 함락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직할부대를 전투부대로 동원해 의정부지구에 중점을 두면서 서울 방어를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육군은 우선 육군본부 직할의 모든 재경부대를 동원해 전방의 제1사단과 제6사단, 제7사단에 배속시켜 방어력을 증강했다. 6월 26일 저녁에는 육본 교도연대를 비롯하여 이 일병이 소속된 육본 직할부대를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하여 창동 방어선에 배치된 국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국군은 의정부-창동-미아리 방어선에서 육탄공격까지 감행하면서 결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절대적인 전투력의 열세로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한강선 방어 작전을 전개했다.
7월 초·중순 미군이 전선에 투입됨에 따라 미군이 서부 전선을 맡고, 국군은 중·동부 전선을 맡아 금강 선-노령산맥 선-소백산맥 선으로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전개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직할부대는 육군본부와 함께 7월 4일 대전으로, 7월 14일에는 또다시 대구로 축차적으로 철수했다. 부대는 철수 과정에서도 한강방어선-청주-상주 축선으로 지연전을 실시하는 국군을 지원했다. 북한군이 계속 남진함에 따라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을 편성하고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국군 부대에 적시적인 탄약 지원을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8월 15일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1-ㅅ-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