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秉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16244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경상남도 양산군 온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한 1950년 12월 18일, 제6사단이 동두천 일대에 주둔할 때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6사단은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제2연대는 사단의 예비로 동두천 일대에 집결했다. 사단 장병들은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산병호 및 기관총 진지 구축과 철조망 지대 설치 등 방어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아군의 예상대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주공격 방향으로 하여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했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에서 고군분투했지만, 적들이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자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사단은 1951년 1월 1일 야간에 의정부를 거쳐 창동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곳에서 미 제9군단은 2월 11일에 시작된 중공군 2월 공세를 지평리-원주 선에서 격퇴하고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병희 일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반격작전시 북한강 남안의 가평-의암 선까지 진출하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6일에 화악산을 좌우로 잇는 고지군까지 진격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 4월 공세로 아군의 후방이 차단되면서 큰 피해를 받고 23일부터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다. 이날 그는 가평으로 철수할 때에 적의 추격을 따 돌리기 위해 후방에 남아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3-ㅇ-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