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희(李秉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703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희 일병은 충청남도 대전시 성남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중순에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0월 30일에 당시 재창설 중이던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희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얼마 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그는 제32연대 장병들과 함께 의정부 일대에서 근거지를 설치하고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10월 말과 11월 말에 두 차례에 걸쳐 총공격을 실시했으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다시 38선 일대로 철수를 단행했다. 이병희 일병은 12월 초에 장병들과 함께 중공군 침공에 때를 맞춰 더욱 기승을 부리던 북한군 패잔병들의 활동을 소탕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제2사단은 12월 8일에 38도선 상의 방어선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령하고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장병들은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진지구축에 노력을 집중하여 12월 중순경에는 완료되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총공격을 감행했다. 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였다. 이병희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에서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웠다. 그러나 사단은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면서 방어진지는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와해 되었고,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청평으로 철수했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철수하던 도중에 후방을 차단한 적 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실시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3면-0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8-ㄷ-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