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훈(李炳勛)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830

공훈사항

이병훈 순경은 1923년 3월 4일 전북 전주시 금산동에서 출생했다. (출생지 및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금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함안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금산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 금산-대전, 금산-옥천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의거 경부선의 주보급로 경비를 맡아 7월 1일부터 충남 직속대대 100명으로 대전-영동 간의 철도경비를 하는 한편 100명을 옥천과 대전 외곽에, 100명을 금강과 신탄진에 배치하여 경계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때 이 순경은 대전 외곽에 배치되어 경계작전을 수행했다.
충남경찰은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1대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50명의 포로를 획득하고 2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5일 이 순경이 소속된 제1대대는 대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집결해 있는 수십 명의 북한군을 포위 급습하여 사살 3명, 포로 획득 2명, 지방 공비 4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후 제1대대는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전북 곡성으로 후퇴했다가 계속해서 전선이 남으로 이동함에 따라 8월 중순 함안지구로 이동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이후 이 순경은 8월 하순까지 방어작전을 수행하면서 적 3명을 사살하는 많은 공을 세웠다. 8월 30일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북한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는데 이 순경은 적의 공격을 저지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훈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ㅌ-06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