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화(李秉和)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806272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이병화 일병은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남파된 북한 유격대에 의한 습격·파괴활동으로 사회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가운데,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기 위해 1949년 3월경 제6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동년 8월 10일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18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일병은 제18연대 장병들과 함께 1949년 9월부터 1950년 1월까지 옹진지구전투사령부에 파견되어 옹진반도의 38도선 상에 위치한 은파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제18연대(-)는 동일 오후 5시부로 동두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덕정 서북쪽의 용암리 일대에서 이 지역에 투입된 북한군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제3대대와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포천 축선에 투입된 적에 의해 의정부가 함락되어 퇴로가 차단됨으로써 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는 고양을 거쳐 28일 밤 행주나루터에서 한강을 도하하여 김포로 철수했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6월 29부터 7월 3일까지 김포지구전투사령부에 소속되어 김포비행장-오류동-영등포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 결과 국군 주력이 한강방어선을 형성·지탱할 수 있게 되었고, 측방을 보호받음으로써 퇴로차단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연대는 7월 3~4일 안양 저지선의 덕안리 부근 전투에서 격전을 치렀다.
7월 5일 18연대는 제1, 제8연대와 함께 수도사단(수도경비사령부 개칭) 예하부대로 재편되었다. 연대는 7월 10일 진천 남방의 문안산 일대에서, 12~13일 청주 북방의 미호천 방어선에서, 그리고 14일~16일 남일면 성무봉 일대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지연시켰다.
7월 23일 연대는 영주 남방의 적동리 일대에서 아군 제8사단의 철수를 엄호하고, 이어 길안-청송 방어선에서 북한군 제12사단과 격전을 치르면서 적들의 남진을 8월 6일까지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8월 1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3-ㅇ-07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